인터뷰 1부 보기(https://www.tokenpost.kr/article-49319)
Q. 우리나라 가상자산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규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규제 관점에서 선진국하고 경쟁하려면 어떤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법으로 가상자산을 금지하고 있는 명시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행정지도가 있을 뿐이죠. 아시다시피 2007년 9월에 정부기관 합동대책 TF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예고했죠. ICO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엄단하겠다고 했고요. 그렇게 엄포만 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많이 진행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업자 등록을 하러 세무서에 가면, 가상자산 관련 내용이 들어있으면 사업자 등록을 안 받아줬고요. 은행에서는 법인 사업자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았어요. 이미 전에 회사를 차려 가상자산 사업을 하던 것도 은행이 갑자기 예금 계좌를 정지했고요. 거래소의 경우에는 실명계좌를 발급해주지 않고, 발급했던 실명계좌는 중단시키고. 그래서 거래소들이 일반 법인통장을 벌집계좌로 이용해 거래해왔죠.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암호화폐가 들어간 연구 과제는 내놓지도 않고, ‘블록체인은 진흥하되, 암호화폐는 진흥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공공연히 했고요. 중소벤처기업부는 가상자산이 포함된 사업은 벤처기업 지정에서 제외하고, 투자도 지원 못 하게 하고. 한국벤처투자 같은 곳은 가상자산 관련 기업에는 투자를 지원해주지 않았고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거든요. 이 정도 되면 사실 ‘국가의 의지’라고 보는 거죠. 국가가 보이지 않는 규제를 한 겁니다. 어디에 명시적으로 쓰여 있지도 않은데 이런 일들이 벌어졌거든요. 차라리 보이는 규제는 해당 법에 대해 위헌·위법 심사를 거쳐 시정할 기회가 있어요.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서 개정할 기회도 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규제들은 명시적인 규제가 아니라, 실제 운영을 그렇게 할 뿐이기 때문에 어떻게 시정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면 유령 같은 규제지만 실존하는 규제들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사이에 선진국들은 어떤 규제 태도를 취했냐면요, 기존 법 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지 다른지를 가려서 증권 규제와 비증권 규제로 나눠 다루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국가에서 증권적인 성질을 가진 가상자산은 기존의 증권법을 따르게 합니다. 자본주의와 함께 발달해온 증권법의 규제 안에서 동일한 규제를 따르라고 해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 발행은 증권의 발행’이라고 선언하면서 예외적이지 않은 한 모두 기존 SEC 법에 따른 증권 발행 절차를 밟으라고 했죠. 해당 요건에 맞으면 증권 발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물론 증권발행은 원래부터 까다롭습니다. 우리나라도 증권을 공모하려고 하면 주관사인 증권사를 선정하고 엄격한 절차를 거치잖아요. 법률 실사도 나오고, 회계 실사도 나오고. 물론 사모라는 게 있어요. 49인 이하일 때는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투자자들을 모아서 발행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ICO를 49인 이하로 하는 아이디어도 나오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보유자 수가 너무 적어서 진정한 생태계가 유지되기 어렵죠.
Q. 그러면 구체적으로 가상자산을 어떻게 규제해야 합니까?
저는 가상자산을 증권형, 지불형, 유틸리티형으로 나누고, 유틸리티형은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시장법이 증권 발행 규제를 하고 있거든요. 증권적인 성질을 가진 가상자산은 당연히 자본시장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많은 거래소에 거래되는 토큰들은 증권이 아닙니다. 해당 가상자산들이 증권이었다면 이미 금융위에서 엄단했을 거예요. 다 비증권 토큰들이에요. 그럼 비증권 가산자산들은 어떤 규제를 하느냐, 소위 지불형 토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화폐 또는 선불 지급수단에 가깝습니다. 지불형 토큰은 상당한 내재적 가치를 가질 때 그 가치만큼 가격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럴 때 문제가 되는 건데, 지불형 토큰은 전자금융거래법에서 규제하죠. 그렇지만 실제로 지불형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아직 너무 적다 보니 규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요.
반면에 유틸리티용 토큰은 사실상 이용권이에요. 이용권은 특정한 서비스와 연계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목욕탕 이용권, 헬스클럽 이용권, 이런 것들이에요. 이러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들은 사회적으로 미치는 위험이 매우 낮습니다. 왜냐하면 투자 대상이 아니니까요. 혹시 5,000원짜리 목욕탕 이용권 1억 원 어치를 사놓는 사람을 본 적 있으세요?(웃음) 사놓으면 내년에 2억 원이 됩니까? 사놓았다가 그 목욕탕 망해서 없어지면 1억 원 날리는 거죠. 에버랜드 이용권 1억 원 어치 사놓는 분 보셨어요? 사놓을 리가 없죠. 내년에도 1억 원일 거 아니에요? 왜 내 돈을 에버랜드 이용권에다가 얹어 놓냐고요. 굳이 왜? 은행에 넣으면 이자라도 나오는데. 에버랜드는 이자 안 주잖아요. 환불도 안 돼요. 놀이기구 평생 타야 돼요.
또, 유틸리티 토큰은 상품권 같은 겁니다. 어떤 특정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정도죠. 우리나라가 상품권 규제를 다 없앤 이유이기도 해요, 규제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평소 온라인 상품권을 많이 주고받으실 텐데요. 그게 무슨 사회적인 위해를 가져오나요? 예를 들어 롯데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짜리를 매점매석해서 수십억 원 어치 사두면 갑자기 20만 원이 되나요? 백화점 상품권을 싹쓸이해서 상품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20만 원에 팔아도 결국 액면가는 10만 원이에요. 백화점 가면 10만 원 밖에 안 줘요.
그런데 지금의 특금법 규제는 무조건 종류에 상관없이, 실질에 상관없이, 성장 초기 단계인지 아니면 지배적인 점유율을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똑같이 최고 강도의 규제를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입장은 선진국의 규제 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규제의 문제점은 ‘묻지마 동일규제’, 서로 다른 가상자산을 동일한 규제로 강력하게 묶어 처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규제개혁 당당하게’라는 시민단체에서 대표활동가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떤 취지에서 설립된 단체인지요. 또, 어떤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시는지요?
‘규제개혁 당당하게’는 올해 9월에 발족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규제개혁 당당하게’는 규제 개혁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이고요. 또, ‘당당하게’라는 이름처럼 비굴하게 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규제 개혁은 시민의 권리거든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우리나라 헌법 제1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쓰여 있잖아요. 즉, 민주공화국, 민주국가라는 것은 국민이 모든 권한의 원천이라는 뜻이고요. 정부의 권한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천부(天賦), 정부가 하늘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서 국민을 지배하게끔 태어난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세우고 정부, 소위 ‘어드민(admin)’을 세운 거죠. 그래서 행정부(administration)잖아요. 어느 회사나 조직이나 어드민 역할을 하는 것은 나머지 조직에 봉사하는 역할이고요. 그런데 공동체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발생하면 규제를 만들기 시작하죠. 법으로 만들어서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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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나라 규제 시스템은요,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하는 열린 규제 시스템이 아니라, ‘허용된 것만 허용한다’는 닫힌 규제 시스템이에요. 예를 들어 ‘인허가 시스템’이 너무 많아요. 우리 주변을 보시면 전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인허가 규제예요. 허가와 신고는 굉장히 다릅니다. 허가는 정부가 어떤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가깝고요, 신고는 원래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하겠다’라고 정부에 알려주는 것에 가깝거든요. 지금의 규제는 허가로 되는 것이 너무 많고, 또 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하면 형사처벌 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왜 이렇게 강력하게 행정 처분까지 부과하는 규제를 만들어 왔을까요? 사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소위 사람답게 품위를 갖추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습니까? 민주주의의 역사도 짧고, 독재 정부 시절도 있었고요.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아직도 우리나라 규제는 닫힌 규제 시스템, 막는 규제 시스템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 선진국들을 보시면 수백 년 간의 민주주의 투쟁 역사에 시민사회의 성숙함이 더해져, 열린 규제 시스템, 푸는 규제 시스템으로 바뀌었어요.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닫힌 규제 시스템을 열린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우리 시민사회가 충분히 성장했다고 보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가 스스로 열린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내자’라는 차원에서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모여 ‘규제개혁 당당하게’를 만들게 됐습니다.
Q. 내년은 어떤 한 해가 될 거로 전망하십니까?
특금법 때문이기는 하지만 내년 3월에 가상자산사업 신고를 통과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사업을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겠죠. 법정신고사업자로서 신뢰를 갖게 되니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고요. 스타트업들은 어렵겠지만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위주의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출현하고, 거래소도 대형 거래소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사업을 전개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대형 거래소들의 활동에 따라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제는 많이 형성됐죠. 공정거래법을 생각해보면, 대기업들이 출현하면서 공정거래법이 나온 거예요. 중소기업들만 있으면 공정거래법이 크게 필요가 없죠. 시장 지배력 측면에서 불공정거래 행위들이 생기면서 공정거래법이 나온 것처럼, 대기업 위주로 가상자산 산업이 개편된다면 불공정거래 이슈가 불거집니다. 대기업들이 만든 생태계에 참여해 대기업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 대기업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해요. 안타깝지만 이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독점규제와 공정거래법이 생긴 거죠.
가상자산사업도 대기업 위주로 서비스가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그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면서 합리적인 규제의 필요성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것은 중소기업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나아가 대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일정한 룰이 없을 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고, 이익 앞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보니 적절히 합리적으로 규제해주는 룰이 필요한 거죠. 여는 규제, 또는 푸는 규제로서의 합리적인 규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Q. 내년에는 무엇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이신가요?
저는 특금법 재개정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스타트업을 위한 배려가 너무 없어요. 법 시행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법 시행 후 신고사업자와 신고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자들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스타트업들이 특금법 하에서는 아무런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될 것입니다. 토큰포스트도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특금법의 기준을 완화해서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 진입할 수 있는 진입 창구를 열어달라는 여론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의 미래가 없는 나라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삼성과 LG도 과거에는 아주 작은 기업일 때가 있었을 거고요. 지금의 대기업들이 저렇게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이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겠지요. 마찬가지로 인터넷 산업도 20년 전에 네이버, 다음이 창업해서 수많은 경쟁을 이기고 서비스를 개선해서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는 글로벌 플랫폼들에 완전히 장악돼 있지 않겠습니까?
블록체인 산업도 마찬가지죠. 미래에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블록체인 서비스가 담당하게 될 것인데, 서비스들의 공급자가 우리나라 기업이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제는 어떤 서비스든 데이터를 장악하기 때문이거든요. 우리 국민들의 데이터,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우리나라 법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규제되는 그런 사회를 위해서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발전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특금법의 불합리성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또 블록체인이 응용돼 서비스되는 분야 즉, 디지털 헬스케어, 마이데이터 사업 같은 곳이 많은데요. 이런 분야에서 실용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들을 많이 도와드리고 싶어요. 왜냐면 우리나라에는 블록체인 규제뿐 아니라 해당 업권별로 데이터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많습니다. 특히 의료데이터는 거의 활용할 수 없도록 규제가 되어 있고요. 금융 데이터는 다행히 최근 금융위가 노력을 많이 해서 내년부터는 마이데이터 사업으로 신용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었지만, 막상 실제 시행을 해보면 '막는 규제'의 측면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신사업, 새로운 혁신 산업에서 소위 막는 규제를 여는 규제로 바꾸는 노력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