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특금법 개정안’(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앞두고 물밑 움직임이 분주하다. 관련 산업이 제도권에 들어가면서 ‘생존’ 내지 ‘퇴출’까지 각오해야하는 복잡한 셈법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 양대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은 이러한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라 보고 시장을 주도하는 ‘마켓 리더’를 조용히 준비 중이다.
특금법 개정안 시행, 시장 지각변동 예고
특금법 개정안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등을 갖출 경우 누구든지 가상자산 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음을 핵심으로 한다. 그동안 국내 거래소는 규제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어떠한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지 않았다. 일명 ‘먹튀 거래소’가 난무한 것도 거래소에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특금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시장이 당분간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고수익을 바라고 단기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대거 시장을 이탈하는 것부터, 시장을 혼탁하게 한 ‘먹튀 거래소’와 ‘먹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제도권 테두리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치고 나면, 관련 산업이 자생력을 갖고 힘이 붙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대다수 거래소들이 폐업을 염두에 둘 정도로 특금법 개정안은 ‘저승사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여기서 살아남고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은 거래소들은 시장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에 금융을 더한 블록체인 핀테크 거래소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이사.(사진=두나무 제공)
업비트, ‘블록체인 핀테크’ 시장 확대 박차
지난 2017년 혜성같이 등장해 글로벌 거래량 1위까지 오르는 등 국내 가상자산 열풍을 주도한 업비트는 이번 특금법 개정안이 제2의 도약에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다. 최근 다수 거래소들이 거래량 감소로 수익 악화에 처하면서 인프라 투자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업비트는 공격적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업비트는 2017년 자본력을 확충했을 때부터 국내 블록체인 산업 규모 확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두나무 자회사 ‘두나무앤파트너스’가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3년 간 총 1000억원을 쏟아 붓는 것만 해도 산업 전반을 헤아린 업비트의 폭넓은 시야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블록체인 솔루션 자회사인 람다256에 지원사격을 거듭하면서 자체 개발한 BaaS(서비스형 블록체인 플랫폼) ‘루니버스’의 기술적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루니버스는 블록체인을 적용하려는 기업들의 개발 및 운영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
블록체인 솔루션 상용화를 목표로 삼고 파트너 기업들에 기술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현재 루니버스 고객사는 70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성장일로다. 최근에는 우리기술투자와 종근당홀딩스, 야놀자 등으로부터 총 8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시장 건전성 확보를 위한 자체적인 노력도 눈길을 끈다. 다크코인 계열 ‘모네로’ 등이 논란이 되자 즉각적인 퇴출을 결정했으며, 최근엔 코인 임의 발행으로 수면 위에 오른 ‘코스모체인’을 상장폐지했다. 엄격한 기준을 두고 실행에 바로 나서는 등 투자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고 있다.
이밖에 가상자산 분석 플랫폼인 크리스탈블록체인, 금융솔루션 업체 보난자팩토리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자금세탁방지(AML)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페이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비트가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손잡은 것은 단순히 실명계좌 입출금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닌 가상자산 기반의 테크핀 시장 공략에 나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보안등급 레벨을 4단계까지 끌어올려 원화 입출금을 지원하는 부분과 핀테크 기업이 개발한 금융서비스를 거래소에 연동시키면서 블록체인 핀테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케이뱅크와의 파트너십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부분으로 적시에 승부수를 던지는 이석우 대표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줬다”며 “출범 때부터 차별화된 서비스로 단숨에 회원수를 크게 늘리는 등 업비트는 여전히 업계 흐름을 읽고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어 특금법 개정안 시행 이후가 더욱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허백영 빗썸코리아 대표이사.(사진=빗썸코리아 제공)
빗썸, 외연 확장 ‘양대거래소’ 입지 다진다
빗썸 역시 특금법 개정안을 대비하는 동시에 업비트와 함께 국내 양대 거래소의 우월적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금융준법전문기업 옥타솔루션과 업무협약을 맺고 가상자산 사업자에 특화된 자금세탁방지(AML)와 이상거래탐지(FDS) 솔루션을 공동 개발에 나섰다.
특히 5월에는 허백영 전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재선임해 특금법 개정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빗썸에 입사한 허 대표는 준법감시 총괄, 사업기획 업무를 맡았다. 이후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대표이사를 맡으며 대대적인 조직 정비로 빗썸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특히 대표 재직 시절 금융사 업무 경험을 살리면서 빗썸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고객신원확인(KYC) 기반을 구축하는 등 고객 보호와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허 대표는 씨티은행, 씨티캐피탈, ING은행, ING증권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다.
이밖에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ID ‘마이아이디’에 합류했으며, 싱가포르 거래소 비트맥스(BitMax)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특금법 개정안 시행은 업비트와 빗썸 등 경쟁력 있는 거래소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시중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권의 시장 진입을 터줄 것”이라며 “업비트와 빗썸이 블록체인 테크핀이라는 경쟁력으로 금융권과 맞서 싸우다보면 자연스럽게 글로벌 시장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진행ㅣCBC뉴스 = 권오성 아나운서]
출처 : CBC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