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미국의 디지털 달러 연구·개발에 민간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17일(현지시간) 코인데스크 등 외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디지털 달러에 관한 아이디어는 연준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제 구현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달러의 설계는 중앙은행이 해야할 일"이라며 "민간은 화폐 공급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파월 의장의 이번 발언은 민간이 디지털 달러 설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연준의 입장을 묻는 톰 에머(Tom Emmer) 하원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올해 초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Christopher Giancarlo)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미 달러의 디지털화를 연구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디지털달러재단(Digital Dollar Foundation)'을 설립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디지털 달러의 대략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30페이지 분량의 '디지털 달러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디지털 달러 모델로 중국 디지털 위안화와 같은 이중 레이어 구조를 제시했다.
연준이 상업은행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면, 상업은행들이 국민에게 이를 유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존 화폐 유통 구조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이점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기존 금융 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을 줄이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지안카를로 전 위원장은 그동안 디지털 달러 설계에 민간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보여왔다. 최근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도 그는 "연준은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는 역할을 맡지만, 통화의 설계 등은 민간단체와 협력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이번 답변을 통해 디지털 달러 개발에 민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선을 그었다. 이는 지안카를로 전 위원장이 제안한 민관 협력체제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파월 의장은 디지털 달러 설계에 민간이 참여하는 것이 국민 정서 측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월 의장은 "국민들은 공익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없는 민간 직원들이 통화 공급에 참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달러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기존 금융체계의 비효율적인 면이 드러나면서, 디지털 달러를 발행해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이 CBDC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을 취해왔던 연준도 디지털 달러 연구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연준 그룹이 디지털 달러 개념, 금융을 포함한 사이버 보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디지털 달러가 미국 경제와 세계 준비통화 역할에 도움이 된다면 연준은 중심에 서서 이를 가장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